<청년의 눈>
비상계엄과 2030세대
장백산 자영업 청년
자영업자로 살아가면서 일주일에 하루 쉬는 화요일에는 휴대폰 연락을 잘 받지 않는다. 그날은 영주동에 올라 부산항 야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쏟아지는 메시지에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지금 어디냐?”라며 “어서 빨리 집으로 들어가라”라는 부모님의 걱정과 “이게 무슨 일이냐?”라며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의 대화방 메시지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중 “결국 했네요”라는 한 메시지를 보고 순간 ‘설마’하는 단어가 내뱉어졌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조국 대표의 말대로 “3년은 너무 길다”라고 생각했지만, 윤석열의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난 계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기껏 임기 단축 중임제 개헌을 시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개헌이 아닌 계엄을 선택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작은 모니터 화면에 유튜브 채널 4개를 띄워놓았다. 그것도 부족해 휴대폰 화면도 채널 하나를 선택해 켜뒀다. 순식간에 경찰이 국회를 둘러싸며 출입을 막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저항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장갑차를 온몸으로 막는 시민도 있었다. 각종 언론에서 계엄령과 계엄 해제 방안들을 보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길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다. 라이브 화면을 켜둔 채, 국회 담을 넘는 야당 대표와 국회의장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국회의원들이 무사히 본회의장에 도착하길 응원했다. 책과 영화에서만 보았던 계엄군과 대치하는 긴박한 국회의 상황 속에서 새벽 1시가 넘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새벽 4시 반, 윤석열의 계엄 해제 선언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지만, 어떻게 끝날지 몰랐던 ‘윤석열의 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라며 눈을 붙였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 330분 만에 해제된 다음 날 아침 뉴스는 진보와 보수를 나눌 것 없이 윤석열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감히 누구 하나 ‘할만했다’든지 ‘잘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하나둘 밝혀지는 계엄 당시의 상황과 준비 과정, 상상할 수 없는 공작과 수거 대상까지 윤석열의 계엄은 치밀했고 잔인했다. 야당은 즉각 윤석열의 탄핵안을 추진했다. 12월 4일 오후 2시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야당 의원 수가 2/3가 되지 않았지만, 큰 저항 없이 통과되고 조기 대선이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발의 다음 날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밝혔다. 윤석열을 지키겠다는 결의가 있었다기보다 최악의 수를 던진 현 정부로 인해 발생한 다음 선거의 수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전 국민을 공포의 밤으로 몰아넣은 지 하루 만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계엄을 하나의 정치적 해프닝 정도로 취급했다. 거대 야당의 횡포 속에 국정 차질이 생겨 국민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며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이다”라는 창피한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시 불러일으킨 비상계엄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건인 만큼 어떤 변명에도 정부와 여당에 더 큰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국민의힘은 전 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본 국회 탄핵소추안에 대해 투표 자체를 거부했다. 그들의 참여 불참 당론으로 1차 탄핵소추안은 투표 불성립이 됐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2월 9일 자 발행된 지면 첫 페이지에 불참한 국민의힘 105명 의원 전원의 이름과 사진을 실어 보도했다. 이들은 다음 2차 탄핵소추안까지 시간을 벌며 변명과 망언을 쏟아내 지지층 결집을 주문했다. 이들의 바람대로 보수집회가 연일 이어졌지만, 2차 탄핵소추안에서 204표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가결된 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탄핵과 더불어 윤석열의 무도한 계엄 실행은 12월 17일 공수처 수사를 통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구속영장이 청구된 대통령이 됐다. 12월 19일 서부지법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내란 수괴가 구속되면 대한민국은 다시 정상화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사법부의 결정에 반대하여 법원을 집단 불법 점거하고 파손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법원 외곽을 막고 있던 경찰을 폭행하고 창문을 통해 들어가 집기를 파손했으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잡기 위해 판사실 문을 부쉈다. 헌정사상 처음 일어난 폭동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이에 앞장섰던 2030세대 남성이었다. 60대 이상 노장년층으로 형성되었던 극우 집회에 2030의 모습이 조금씩 포착되더니 어느덧 폭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대한민국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가치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튜브 방송으로 과격한 선동과 직접적인 파괴적 행동과 언사를 스스럼없이 했다.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전복하는 행위를 한 것이다. 웃프게도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10여 년 전, 유머나 밈을 만들고 정보를 나눴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많았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 공간은 오프라인에서 하지 않는 행동들을 자유롭게 행하고 떠들 수 있었다. 비슷한 관심사로 묶이던 커뮤니티에 어느 순간부터 정치를 입혀 넣으면서 유머와 밈이 누군가에 대한 조롱과 혐오가 되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은 선비란 단어로 비하 되었고, 감정 쓰레기통이 된 커뮤니티는 일부 소수만 남아 사회에서 배척된 사람들의 공간으로 취급되었다. 대중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이 공간은 접속한다는 것조차 밝힐 수 없는 사회적 금기가 되는 공간이었다.
음지에서 서식하던 이런 커뮤니티가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강남역 사건’이었다. 가부장제 유교 국가가 뿌리였던 한국 사회의 여성 차별은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사회 곳곳에 남아있던 차별은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개선됐지만,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갈등을 빚어왔다. 점차 높아지는 여성의 권리는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더욱 불붙게 됐다. 사회적 약자에서 동등한 관계의 파트너로 자리 잡아가던 여성의 권리 향상에 정치권도 따라붙었고, 제도적 뒷받침을 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전통적 가부장제를 누리지 못한 젊은 남성 세대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갔지만, 상대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몇몇은 ‘여혐’으로, 더욱 급진적인 변화를 원하던 몇몇은 ‘남혐’으로 번지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 주류의 목소리가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생한 강남역 사건은 그 둘을 맞붙게 했다. 가해자가 마땅히 책임져야 하는 사건이었고, 해당 범죄 예방을 위한 노력과 대책이 필요한 사건임이 분명했지만, 어느덧 해당 사건은 여혐에 빠진 남성이 저지른 사건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에게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개별 사건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성 혐오적 발언으로 매도되었다. 이에 질세라 반대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남역 사건은 젠더 갈등의 상징이 됐다.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관계가 아닌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가며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갔다.
이렇게 터져 나온 남녀 갈등을 먹고 자라며 각 커뮤니티는 더욱 세를 불렸다. 갈등을 완화하고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권은 각 정당의 이익에 따라 갈등을 증폭시키고 정치화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대선에서 나타난 이준석의 ‘이대남’과 ‘세대 포위론’이다. 자신을 대변할 마땅한 정치인을 찾지 못하던 2030 남성들에게 이준석의 등장은 젊은 남성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라이징 스타’였다. 이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 대표가 된 이준석은 지난 대선 때 ‘이대남’을 외치며 청년층을 보수 정치의 핵심으로 끌고 들어왔다. 보수 정당의 대표를 뽑고, 나아가 대선 승리까지 획득하며 스스로 효용 가치를 깨달은 이들은 더 이상 음지에 서식하는 소수의 커뮤니티 회원이 아닌 사회의 주류이자 대중의 목소리라고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은 윤석열 정권의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수석은 이들을 따로 관리했고, 일부는 행정관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계엄과 내란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이 시점에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에게 설 선물을 보냈다. 보수의 한 축이 된 2030중 일부는 본인들에게 익숙한 매체를 통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한쪽 끝단에 서 있는 편향된 극우의 스피커가 된 이들은 자신의 채널에 쏘아지는 슈퍼챗을 받아먹으며 더욱더 괴물이 되어 갔다.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다니며 자신이 “CIA 출신 블랙요원이다”라고 말하고, 선거 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되었다는 등의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극우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은 다시 그들만의 음지 속에 갇히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2030세대들의 젠더 갈등과 더불어 나눠진 정치색의 변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대별로 그 세대가 함께 겪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상황에 맞춰 세대 간 갈등과 정치적 성향이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2030 세대는 한 세대 내에서 젠더 갈등에 부딪혀 나누어졌기 때문에 같은 생애주기를 만들어 가는 동료이자 동지를 잃어버린 것과 같아 보인다. 이는 앞서 설명한 양 극단적인 모습들이 2030 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자주 사용하는 여론조사 그래프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확하다고 볼 수도 없다. 2030 세대 중 스마트폰에 뜬 번호 아래 여론조사 스팸이라 찍혀있다면 흔쾌히 받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쁜 현실 속에서 극단적인 의견을 가진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도, 그들을 대변하고 호응해 줄 여유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2030 세대를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가 가난과 군사독재 시대를 극복하고 만든 민주적 사회 시스템이 이 정도의 갈등으로 무너질 만큼 빈약하지 않다는 것을 믿고, 2030 세대가 갈등을 넘어 희망을 품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열어갈 수 있게 길을 닦아주어야 한다.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이 편중된 세계에 진입하지 못하면 소외되고, 낙오되는 참담한 길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지방 분권을 통한 다양한 장소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2030 세대에게 숨통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지방 분권 사회가 정착된다면, 젊은 세대들은 그들끼리 그릇 뺏는 제로섬의 경쟁자가 아닌 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파트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영업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