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탐방>
책방‘감’에 감
구수경(인본세상 편집위원)
부산교대 정문 삼거리에 서서 교문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들면 여러 간판이 있는데 그 중 억지로 찾을라치면 바로 보인다. 책방 감.
여기서 감은 흔히 “감(感) 잡았어요” 할 때 쓰이는 감이다. 한글 사전에서는 ‘느낌으로 대충 알아차리거나 그것의 실마리를 찾아내다’라고 풀이하고 필(feel)이 온다, 존재감, 자존감, 효능감, 우월감, 유능감, 등등에 쓰이는 감이다. 책방지기 서희원 선생의 책방에 대한 깊은 꿈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책방 명이다. 국어 대백과 사전을 뒤지고 뒤지면서 한글 연구를 하는 지인과 심사숙고했던 탄생 비화마저 큰 이야깃거리였다. 책방 감은 참 감이 좋다.
그가 책방을 연다고 하자 요새 누가 서점에 가냐, 인터넷 시장이 대세인데 뻔히 알고도 망할 사업을 시작하느냐, 오래 못 갈 거라는 등 여러 말들이 있었고 반신반의하던 그는 드디어 2022년 9월 질렀다. 그의 고집을 더 이상 말릴 수는 없었으나 주변의 마음들은 조마조마 그 자체였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최근까지도 너무 많이 힘들었고 금융 대출도 불사하였다. 이제 4년 차. 현재도 그렇게 큰 수익은 아니나 은행 이자와 월세를 내기 위해 여분의 대출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괜찮다며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래도 책방을 꼭 해야만 하는 이유를 답한다면 어떤 말일까?
서울 신촌에는 ‘무사’라는 책방이 있다. 무사는 싱그럽고 감미로운 목소리 가수 요조씨가 책방지기이다. 그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책방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자주 묻곤 하였다. “책방에는 수익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책방에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공간이다.”라 답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듣는 이의 가슴은 희망적이다. 아지랑이 같은 ‘그 무엇’을 찾아 오늘도 책방지기의 손길 발길은 분주하였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부러움이다. 아늑한 책방에서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꿈꾼다는 것이야말로 살맛 나게 하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동네서점, 책방은 단지 책을 판매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뷰를 위해 책방에 들어서니 책방 감의 최고 단골 1호 손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방에 오는 단골들의 발걸음 횟수대로 1호, 2호, 3호로 칭하였는데 책방 인근에서 직장을 다니는 1호 손님은 점심시간을 틈타 거의 매주 한 번은 책방에 들린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안고 있으며 글을 읽을 때도 훨씬 차분해진다. 특히 책방 감의 편안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더욱 그러하고 책방지기의 정성스러운 차와 커피 맛이 일품이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니 어떤 보충 자료를 찾는데도 부족함이 없어 더욱 충족감과 안정감을 준다며 열변이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으면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인터넷 정보가 모두 정답이 아닐 경우가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 직접 관련 서적을 확인한 후에야 마음이 놓인다. 이때 시중 도서관과는 달리 책방지기의 빠른 정보제공이 한몫이니 책방예찬론을 펼칠 수밖에 없다. 수천만 권이 저장된 인터넷 자료실과 다른 ‘그 무엇’은 책방의 책방지기이다. 거의 매일 책방을 출입하며 고뇌를 털어놓던 취준생이 “월요일부터 출근합니다”라며 기쁨을 전하던 날도 의미가 깊다. 혹은 앞선 인생 선배로서 ‘그 무엇’을 전하기도 하고 책방지기가 권하는 한 권의 책으로 고객이 충만감을 갖게 되었다면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책방에는 초등학생들이 놀이터처럼 넘나든다. 부모님의 퇴근시간을 기다리거나 학원 시간이 애매할 때 들리기도 한다. 물론 책을 보기 위해서도 온다. 책방에서 준비한 뻥튀기 간식은 남아나지를 않으니 즐거운 비명이다. 지역사회 내 아동지킴이 공간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책방지기는 마치 동네 큰아버지가 된 듯 뿌듯하다.
책방 진입로의 벽돌책은 학생 손님들과 함께 한 작업 작품이다. 하루 단 한 명의 고객과도 진심 어린 시간을 갖게 된다면 ‘상업적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가 원하는 ‘진실 되게’ 사는 삶의 실현 과정임이 틀림없으며 ‘그 무엇’을 향해가는 길 위에 있다.
책방지기 서희원 선생은 자칭 6월항쟁 세대로서 시대적 고민을 안았던 열혈 청년이었다. 교육학, 행정학, 사학을 공부했을 뿐 아니라 공대 출신이기도 하다. 책방에는 천정의 전구부터 책상, 의자 사이즈 배열 상태, 꽂힌 책의 종류 하나하나에서 그의 삶의 여력들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문학분야에는 부족하여 현재 책방에 있는 문학 관련 서적은 유명세로 검증된 것들일 뿐이라고 고백한다.
할 수 없이 책방은 책방지기의 가치 철학을 담을 수밖에 없다. 책방지기는 마치 라디오DJ와 같아서 책방을 찾는 사람은 책방 주인과 유사한 사유를 할 것으로 예정한다. 그래서인지 책방 감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넘나든다. 책방에 마련된 비밀 다락방처럼 정감 어린 작은 공간에는 7~8명이 머리를 조아리고 독서토론회를 열거나 다양한 소모임을 열 수 있다. 3층에는 2~30명 입실 가능한 강당도 갖추고 있어 이벤트 있는 특강이나 좌담회도 가능하다. 현재는 여러 시민 독서 모임뿐 아니라 소담한 회의 장소로 책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방 감에서 직접 주관 진행하는 독서회로는 민주주의 서적 읽기 모임과 돌봄 공부 모임이 있다. 각 10여 명의 회원들이 매월 벽돌 깨기에 도전 중이다. 책방에서는 매월 1회 저자를 직접 모시는 북토크도 진행한다.
서희원 선생의 책방에 대한 시작은 민주시민사회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아주 오랜 꿈이다. 그는 하루 30분만 머물더라도 ‘도서관을 밥 먹듯이’ 화두 삼아 도서관 가기가 습관이 되어있다. 그는 이미 중구 중앙도서관의 우수 회원으로 수상받은 바 있으며 특히 책방과 관련한 많은 서적을 섭렵하였다. 책방이야말로 희망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임을 알아차렸다.
대학 시절 야학교사로 활동했던 참삶은 배움과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믿었고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초석은 민주시민교육이라 설파한다. 사람의 일생은 배움과 함께 해야 하는 것으로 모든 시민은 평생교육에 임해야 함을 알았으며, 스스로 평생교육사 자격도 가졌고 제1회 평생교육사협회장을 맡기도 했다. 급기야는 ‘학교’를 열려고 한다. 대안대학, 민주주의 학교, 평생 학교. 그의 꿈은 이루어 질 것이다. 그의 자리 등 뒤에는 체 게바라가 그를 응시하고 있다. 개인의 작은 희망으로 시작된 교육에의 열정은 마침내 한층 진일보하는 사회의 모습으로 대답할 것이다.
조선말 박지원, 박제가 등 실학파들과 우정을 다졌던 이덕무 선생을 책만 보는 바보(간서치)라 일컬었다. 선생은 책 읽기를 9개로 나열하였는데 입으로 책을 읽는 독서(讀書), 눈으로 책을 보는 간서(看書), 베끼면서 읽는 초서(抄書), 책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며 읽는 교서(校書), 책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읽는 평서(評書), 직접 글을 짓는 저서(著書), 책을 소중히 보관하는 장서(藏書), 좋은 책을 빌리는 차서(借書),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서(日暴書)가 그것이다. 선생은 빌리고 말리는 수고까지 포함하여 책 읽기라 칭한다. 가방을 챙기면서 한두 권의 책을 집어넣는다. 하루 종일 한 번도 펼쳐 보지도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오늘은 기회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책을 가방에 넣었다 빼는 것으로도 책을 읽었다며 ‘그 무엇’을 채워가고 있다고 위안하련다.
책방 감은 참 편안하다. 대형서점에 셀 수도 없이 즐비한 책들의 위세에 짓눌려 작고 작아지는 나를 보지 않아 위안이 된다. 아담한 책방을 들러보며 언젠가는 이것들을 다 읽어 낼 것이라는 야심찬 목표도 살짝 가져 보니 풍족하고, 책방지기는 원하는 책 제목 근처만 둘러대도 안성맞춤으로 딱 가져다줘서 편리하고, 적절한 할인가로 값을 쳐주니 또 이득이다. 그리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쓰지도 달지도 않은 컬컬한 입맛을 돋우는 커피 한잔으로 사람 대접받으니 살맛이다. 지금 필요한 책이 있으신 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이끌려 실실 슬리퍼를 끌고 책방 감으로 가보시라. 환대가 있으리라. 예상치 못한 내일을 볼 것이다.
<(사)인본사회연구소 사무처장, 인본세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