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28-보물찾기>
사포지향 부산, 자연이 가져다준 공원들[1/3]
김해창(인본사회연구소 소장 /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도시는 공원을 필요로 한다. 도시공원은 바로 그 도시의 품격을 보여준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드는 사람 살 집도 모자라는 데 맨해튼 한복판의 거대한 빈 땅에 공원을 만드냐는 반발의 목소리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부산은 산, 강, 바다, 온천이 갖춰진 사포지향(四抱之鄕)의 도시라고 한다. 작년 말 동아대 김영하 교수와 함께 부산연구원 부산학 교양총서로 『부산 도시공원 역사 이야기』를 펴냈다. 부산의 보물인 공원을 크게 ‘사포지향 부산, 자연이 가져다준 공원’, ‘살고 싶은 도시 부산, 도시와 함께 성장해 온 공원’, ‘호국·민주 성지 부산,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원’으로 나눠 부산의 대표적인 공원 26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포지향 부산, 자연이 가져다준 공원’ 10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지형·지세라는 시선에서 공원을 본 것으로 금강공원, 초읍 어린이대공원, 해운대 장산구립공원은 ‘산의 즐거움’을 담은 공원, 송도공원·암남공원, 해운대공원, 광안공원은 ‘바닷가의 즐거움’을, 아미산전망대공원, 을숙도공원, 삼락생태공원은 ‘철새도래지의 생태’를 품은 공원 이야기다. 시민들의 삶의 문화가 축적되고 표현되는 공간으로 우리 지역의 공원을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금강공원은 금강산(金剛山)의 금강이란 이름이 붙은 국내 유일의 공원으로 부산 동래구 우장춘로 인근 금정산(金井山) 자락에 들어서 있다.
체험학습장으로 할용되는 금강공원 [출처 : 부산시설공단]
산이 곧 공원이요 공원이 곧 산이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몇 분 만에 도심을 벗어나 깊은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수십 미터 키의 아름드리 금강송 숲을 보면 왜 금강공원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1940년 금강원(金剛園)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금강공원은 한때 동물원과 식물원 그리고 놀이동산까지 갖춘 부산, 아니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어린이들의 ‘원더랜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심 속의 편안한 휴식 공간 그 자체’이다.
금강공원에는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묻어있다. 1920년 담배 장사로 큰돈을 번 일본 상인이 산세가 수려한 금정산 계곡물을 이용해 청룡담(금강연못)이라는 인공 연못을 조성한 데서 시작된다.
금강공원의 시작, 금강소나무 숲속 연못 청룡담 [사진 = 김해창]
청룡담 인근에 ‘황기 2600년 기념비 금강원지’라고 새겨진 너럭바위와 멀지 않은 또 다른 바위 위엔 ‘13층 후락탑(後樂塔)’이 서 있다. 동래부 관청의 문루 망미루(望美樓)를 옮겨와 정원 입구로 만들고 독진대아문과 내주축성비, 이섭교비 등을 모조리 옮겨다 정원 장식품으로 활용했다.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은 해방 후에도 방치되다 2000년대 들어 온천장 주민단체가 이전을 추진해 2014년에야 동래구 동헌으로 제자리를 찾게 됐다.
이곳 공원에서는 부산민속예술관,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임진동래의총을 만날 수 있다. 명물은 ‘바위를 뚫고 자란 소나무’. 커다란 바위 한가운데를 소나무가 뚫고 올라 엄청나게 큰 나무로 성장한 모습이 놀랍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자연의 현장, 바위를 이겨낸 소나무[사진 = 김해창]
숲길 중간엔 ‘토종 고리도롱뇽 서식지’라는 표지가 세워진 연못이 있고, 금강연못 아래엔 ‘거북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인근에 일제 만행 희생자위령비가 서 있다.
금강공원 하면 추억의 케이블카를 빼놓을 수 없다. 정확한 용어는 로프웨이다. 길이 1,260m로 복선이며, 1966년에 개통됐는데 해발 540m인 금정산 종점까지 6분 정도 걸린다. 한꺼번에 48명까지 탈 수 있다. 2003년 주민 10여 명이 금강공원 관리사무실을 찾아 공원 활성화에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혀 ‘금강공원 활성화 추진협의회’도 만들어져 있다. 금강공원이 자리한 금정산은 올해 안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강공원을 둘러본 뒤엔 동래온천에 지친 몸을 푹 담가도 좋을 것이다.
다음은 초읍 어린이대공원. 부산진구 초읍동 백양산 성지곡수원지를 품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부산에서 가장 큰 근린공원이다.
어린이대공원을 상징하는 옛 부산어린이회관(現어린이창의교육관)과 상징조형물[사진 = 김해창]
백양산은 퇴적암의 석회질 고토양층이 녹아 만들어진 석회동굴, 돌서렁, 토르 등 독특한 지형이 잘 보존되어 부산지질공원 12개소 중 한 곳으로 지정된 명소이기도 하다.
성지곡수원지는 1906년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거류민단이 공동계약을 맺어 1909년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이자 근대적 상수도용 수원지이다. 이 댐의 저수량 61만t은 1910년 당시 부산 전체 인구 4만 5천 명이 150일간 쓸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한다. 1972년 낙동강 상수도 취수 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수돗물 공급을 중단하고 수원지는 성지곡유원지로 지정됐다. 집수와 저수, 침전, 도수로(導水路)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성지곡수원지는 2008년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됐다. 성지곡수원지는 그 자체로 상수도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이 공원에 부산어린이회관이 들어섰고 지금은 부산교육청 어린이 창의교육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어린이 전문 과학문화복합전시체험관이다. 성지곡유원지는 1978년 ‘세계 아동의 해’를 맞아 그해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어린이 놀이공원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1982년에는 성지곡 동물원이, 1989년에는 어린이 놀이동산이 개장했다. 어린이 놀이동산 개장으로 어린이대공원은 부산시민이 나들이 가고 싶은 곳 1위로 연간 70만 명이 찾는 인기 있는 유원지가 됐다.
어린이대공원은 삼나무 숲 사이로 지그재그형 무장애 데크길 ‘덱로드’가 있고 수원지 위 저수지 사잇길인 ‘녹담길’은 너비 2~4m에 총길이 590m로 야간 경관조명이 갖추어져 있다. 성지교 아래 호수엔 팔뚝만 한 잉어 떼가 유영하고 있다. 백양산 위쪽으로 올라가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삼나무, 소나무, 편백나무로 이루어진 치유의 숲을 만날 수 있다.
보행이 불편해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무장애 데크 녹담길[사진 = 김해창]
‘피톤치드의 효과’를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산림욕의 최적지이다. 성지곡수원지의 숲은 생태의 보고이다. 내려오는 길에 사명대사 호국 광장과 유정대사 충의비를 볼 수 있고 수원지 둑 한쪽 끝 편 ‘키우미숲’에선 ‘김정한 선생 문학비’를 만날 수 있다. ‘사람답게 살아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해운대 장산구립공원. 2021년 구립공원으로 지정됐는데 국립공원을 추진 중인 금정산의 4분의 1이 조금 안 된다. 도시공원이 아닌 자연공원으로 해운대구의 진산인 장산(해발 634m) 자체가 하나의 ‘도심 자연사박물관’임을 보여주고 있다. 삼한시대 소국이던 장산국(萇山國)이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장산(萇山). 장산구립공원은 대천공원에서 장산습지, 장산마을로 이어지는 4~5km의 ‘천상의 화원’이라 할 수 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양운·장산폭포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장산구립공원내 양운폭포 [출처 : 해운대구청]
장산은 물이 많은 산이다. 우리나라 고유민속 신앙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마고당도 있고, 도시 전설로 장산범 이야기도 품고 있다. 장산의 입구 대천공원 춘천으로 흐르는 계곡물에는 은어 버들치 점몰개 다슬기를 볼 수 있다. 장산사, 석태암, 폭포사, 대원각사 등 사찰이 장산에 깃들어 있다.
장산에서 자연생태계 보전 가치로 가장 뛰어난 곳은 해발 450m 지점에 있는 ‘장산습지’다. 이곳은 식생보전등급 1등급의 식생 및 원형 유지가 양호하며, 96종의 식물종이 있어 생물종자원 보전 가치가 높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평가기준에 따른 희귀식물 5종(께묵,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꽃창포)과 억새군락 및 고마리군락 등 생태적 가치가 높아 2017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장산은 천연기념물인 반딧불이의 최대 서식지이자 부산을 대표하는 억새 명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장산개척단이 지금의 장산마을 20만 평을 조성해 무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가꿔왔으며, 1970년대 초엔 젖소 사육도 했다. 공군부대 인근 장산 정상에 2022년 1월 세워진 표지석에는 ‘장산 바다를 품고 하늘을 꿈꾸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장산구립공원이 지정되면서 정상부의 군사 제한 보호구역이 70여 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장산 옥녀봉에서 바라본 해운대 바다 전망 [출처 : 해운대구청]
다음은 송도공원. 1913년 우리나라 공설 1호 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송도해수욕장은 부산 앞바다를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멋진 공원이다.
근대 공설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송도해수욕장 [출처 : 비짓부산]
1950~70년대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고 1972년에는 해운대해수욕장과 함께 부산시 지정 문화유산이 됐으나 횟집과 고층아파트의 난립에다 연안 오염 등으로 해수욕장 기능도 잃게 돼 1980년대 이후 점점 잊혀져 가기도 했다.
근대 공설해수욕장으로 개장한 송도해수욕장 [출처 : 비짓부산]
도공원의 자그마한 동산인 송림공원 맞은 편엔 구름다리로 연결된 테마휴양공간인 거북섬이 보인다. 거북섬은 2013년 송도해수욕장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 테마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별주부전>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어부와 용왕의 딸 조각상을 설치하는 등 즐길 거리를 더해 옛 영광을 되살리고 있다. 거북섬에서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구름산책로는 365m의 국내 최장 해상 산책로로 마지막 구간에선 바닥 유리로 바닷물이 보인다. 인근에는 2013년 복원·조성한 높이 5m의 국내 유일의 해상 다이빙대가 있다.
송도공원의 명물은 송도해상케이블카. 과거 이곳의 명물이던 케이블카는 1964년에 설치돼 1988년에 운행 중단되었고, 2002년 철거됐는데 2017년 송도공원과 암남공원을 이어주는 송도베이스테이션의 송도해상케이블카가 ‘부산에어크루즈’라는 브랜드로 새롭게 탄생했다. 최고 86m 높이에서 동쪽 송림공원에서 서쪽 암남공원까지 1.62km의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해수욕장 도로 따라 암남공원으로 가는 중간에 인공폭포인 송도 폭포가 있고, 부산 서구 관광안내소를 지나 송도 카페거리 앞에는 현인광장이 조성돼 있다.
송도공원에서 해안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랜 기간 군사시설로서 베일에 감춰져 있었던 암남공원과 연결된다. 암남공원은 1972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됐지만 군사 보호구역에 묶여 출입이 통제되다 1996년 개방되었다. 송도공원에서 1km 정도 거리로 예전에 혈청소 입구로 불리던 암남공원은 해안 절경이 빼어난 데다 남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어서 해운대해수욕장. 정식 명칭은 해운대공원으로 1968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특구 해운대해수욕장 [출처 : 비짓부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가 1.5km, 너비 70~90m, 면적 120,000㎡로 수심이 얕고 조수의 변화가 심하지 않은 데다 주변에 특1급 호텔을 비롯해 숙박·오락시설이 많고 연중 각종 행사와 축제로 해마다 1천만 명이 넘는 피서·관광객이 찾아온다. 해수욕장 끝에 위치한 동백섬은 해운대해수욕장이 미군 휴양지에서 해제된 뒤인 1966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60~70년대 두 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동백공원으로 도시공원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2008년 8월 2일 오후 4시 해운대해수욕장에는 7,937개의 파라솔이 펼쳐지는 진풍경이 연출돼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동백섬 쪽에서 보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인어상은 삼국유사의 <황옥공주의 설화>를 바탕으로 1974년에 처음 제작됐는데 우리나라 설화와 엮어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해운대해수욕장 가운데쯤엔 해운대 관광안내소가, 바로 인근에는 씨라이프 부산아쿠아리움이 있는데 250종 10,000여 마리의 해양생물이 전시되고 있다.
APEC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며 시작한 해운대 모래축제 [출처 : 비짓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은 ‘사계절 유원지’이다. 1월에는 해운대 북극곰 축제, 5월에는 해운대 모래축제, 10월이면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가 해운대 바다로 이어지고, 12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는 해운대 빛 축제가 펼쳐진다. 엘씨티(LCT)를 지나 미포로 가면 횟집도 많고 해운대 유람선에서 해상 투어도 할 수 있다. 옛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에 건설된 블루라인파크는 관광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로 해운대해수욕장과 청사포, 송정해수욕장을 자연스레 이어준다. 해운대는 온천도 있다. 가장 오래된 할매탕과 송도탕, 해운온천 등이 있어 해운대는 ‘사포지향 부산’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어서 광안리해수욕장. 공식 명칭은 광안공원으로 너비 20~110m의 백사장이 1.4km로 펼쳐져 있다. 부산에서 가장 핫한 명소로 빛과 젊음의 축제가 펼쳐지고, 부산의 상징 광안대교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광안대교가 자리하고 있는 광안리해수욕장의 여름 [출처 : 비짓부산]
2003년에 준공된 광안대교는 총연장 7.62km, 현수교 구간 900m, 새하얀 현수교 구조로 부산의 심볼이 됐다. 광안대교는 1년에 5차례 이상 차량이 통제된다. 4월 기브엔레이스, 아디다스 마이런, 5월 다이아몬드 브릿지 국제걷기축제, 7월 나이트 레이스 인 부산, 10월 부산 바다 마라톤, 11월에는 부산 불꽃축제 등이 열리기 때문이다.
광안공원은 부산의 세븐 비치(다대포·송도·광안리·해운대·송정·일광·임랑해수욕장)와 세븐 브릿지(가덕·신호·을숙도·남항·영도·부산항·광안대교)가 함께 있는 유일한 공원이다. 1950년대 정식 개장된 광안리해수욕장은 1980~90년대 수질오염이 심했는데 1996년 부산환경공단 남부사업소(남부환경체육공원)가 유입 하수를 본격 처리하면서 수질이 나아졌다. 이는 조개들의 귀환으로 증명된다.
광안리해양레포츠센터에서는 제트보트, 모터보트, 요트, 바나나보트, 제트전동보드, 패들보드, 카약 등 10가지의 수상레저를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해수욕장 끝 민락 회 센터가 있는 민락동 횟집 거리에는 300여 개의 횟집이 모여있다. 민락 회 센터 앞 광장인 민락 해변 공원에는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에는 해바라기밭, 11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는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광안리는 청춘의 공간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뚜벅이’는 그리 멀지 않은 이기대공원으로 걷기 코스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기대공원은 남구 용호동의 해안 일대에 걸쳐 특이한 지형과 지질학적 특성을 자랑하는 도시공원이다. 이기대공원 전망대 입구에서 구름다리-해식동굴-어울마당-치마바위-곰바위-오륙도 스카이워크로 이어지는 약 4.7㎞의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해안 지형과 광안대교, 해운대, 마린시티 등 부산의 멋진 해안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낙동강하구로 눈을 돌려보자. 아미산 전망대 공원은 낙동강하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본 낙동강하구 일몰 [출처 : 비짓부산]
1960~70년대 해마다 80만~100만 마리의 철새가 날아들었다던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 이야기는 전설로 남았을 뿐이지만 낙동강하구는 1966년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문화재보호법, 연안 오염 특별관리법, 습지 보전법 등 4개의 크고 작은 법으로 보호를 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연유산이다. 이곳엔 1987년 거대한 하굿둑이 들어선 이래, 분뇨처리장, 쓰레기매립장에 이어 을숙도 남단을 지나는 을숙도대교가 들어섰고 지금도 대저대교 엄궁대교 건설 등 끊임없는 난개발이 계속되고 있는 ‘아픔의 땅’이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생태교육장을 표방하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자리 잡았고, 2010년 다대포 아미산에 3층 규모의 아미산전망대가 들어섰다. 지하철 다대포 해수욕장역에서 도보로 1km 정도 오르막길에 있는 아미산전망대 옥상에서는 거제도와 가덕도, 진우도, 장자도, 백합 등등 낙동강하구의 바다 쪽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저녁 시간에는 일몰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미산 전망대에서 본 낙동강하구 일몰 [출처 : 비짓부산]
인근 다대포해수욕장은 끝없는 모래해변이 펼쳐져 맨발 걷기를 하기에 좋다.
다음은 을숙도공원. 새가 많고 물이 맑다 하여 붙여진 을숙도(乙淑島)는 1916년 지적도에 처음 등장한 낙동강 최남단의 섬으로 1,300리 낙동강의 강물이 태평양 바닷물과 만나는 곳이며, 동아시아에서 멀리 호주와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철새의 이동 경로에 위치한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이다. 2001년 12월 당시 지역 시민 환경단체가 ‘낙동강하구 보전을 위한 시민 한마당’을 열고 ‘을숙도 철새 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부산시와 시민이 철새로 대표되는 자연과의 ‘외교 관계’를 새롭게 수립하기를 희망하면서 내세운 말이다.
을숙도는 모래섬과 함께 낙동강 상류에서 흘러온 다량의 토사와 무기영양소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낙동강하구 삼각주의 일부다. 지하철1호선 하단역에서 택시를 타면 을숙도광장까지 기본요금이면 되는 거리가 을숙도공원이다. 을숙도 에코센터와 그 주변을 둘러보거나 옛 쓰레기 압축 시설동 자리가 있던 메모리얼 파크의 1·2 매립장 주위를 천천히 산책하면 수 많은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탐조대에서 바라보는 낙동강하구 에코센터 앞 습지 [사진 = 김해창]
서편 산책로를 따라 20분쯤 걸어가면 을숙도 남단 탐조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갯벌과 갈대밭을 만날 수 있다. 을숙도 남단은 ‘백조(고니)의 호수’다. 추운 날 고니와 수 많은 물오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정신이 맑아진다. 여름철에는 새섬매자기의 녹색 융단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낙동강하구에서 관찰된 법적보호종은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흰꼬리수리, 참매, 잿빛개구리매, 매,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 18종, 흰꼬리수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큰기러기, 물수리, 솔개, 알락꼬리마도요 등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5종)·멸종위기야생생물 2급(27종)으로 알려져 있다.
『을숙도 거대한 상실-낙동강 하구 30년 막개발 탐사』(2009)의 저자 박창희(전 국제신문 기자, 현 경성대 교수)는 새들의 에덴이었던 을숙도의 순결한 자연이 어떻게 유린 되었는지를 ‘게들의 비명’, ‘고향을 잃은 뱀장어’, ‘사라진 원조 재첩국’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을숙도 개발, 그 치욕의 역사를 ‘철새, 문화, 수난, 상실, 공존’의 5가지 키워드로 읽어 내면서 을숙도에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개념을 적용해 개발의 아픈 상징인 쓰레기매립장, 분뇨처리장, 하굿둑, 을숙도대교를 산업 문화유산으로 접근해 스토리를 만들어내자고 제안한다.
낙동강하구 철새 관찰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명지 갯벌이다. 명지주거단지의 남명초 인근에 명지철새탐조대가 있다. 과거 낙동강하구의 본류이던 서낙동강과 현재 본류 사이에 형성된 명지 갯벌은 하구의 중심 갯벌이었으나 1990년대 매립공사 이래 지금은 아파트단지로 변한 곳이다. 그렇지만 남아있는 갯벌만 해도 여전히 세계 최고 습지의 하나이다. 을숙도 상단 을숙도공원에는 낙동강하구둑 전망대, 낙동강문화관, 부산현대미술관(2018년 개관), 서부산권 장애인스포츠센터(2019년 개관) 등이 들어서 있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해도 될 을숙도공원이지만 방문객 수가 순천만습지의 15% 수준이라니 아쉬움이 크다.
삼락생태공원 연못에 피어난 연꽃 [사진 = 김해창]
끝으로 삼락생태공원. 제1호 부산 지방 정원으로 지정된 삼락생태공원은 부산시민공원의 10배 넓이다. 부산 사상구 삼락동에서 감전동, 엄궁동을 포함하는 이 공원은 잔디광장, 야생화단지, 체육시설, 오토캠핑장, 요트 계류장 등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경작지이던 삼락둔치 일부에 1998년 사상구청이 운동장(446,280㎡)을 조성했다. 현재 축구장, 야구장, 농구장, 족구장, 테니스장, 배구장, 게이트볼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럭비구장, 사이클연습장, 국궁장, 그라운드골프장, 파크골프장 등 총 14종목의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2006년 부산시는 낙동강 둔치 재정비 사업으로 삼락둔치에 겨울 철새 먹이터 마련을 위해 친환경 영농원과 습지(66,115㎡)를 복원했다.
삼락생태공원은 맥도·대저·화명 둔치에 조성된 생태공원보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좋다. 삼락생태공원은 자전거 유료대여소를 이용하면 좋다. 이때 신분증이 있어야 한다. 자전거대여소 인근 삼락습지생태원(221,614㎡)에서는 꽃창포, 물억새, 연꽃, 갈대 등 20여 종의 수생식물과 다양한 곤충, 양서류, 어류를 관찰할 수 있다. 강변대로 변으로 원추리, 비비추, 벌개미취 등 70여 종의 야생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둔치 하부에는 낙동강 문화마당, 중앙광장, 인라인스케이트장, 파크골프장이 조성되어 있다. 삼락생태공원에서는 매년 10월 부산시 주최로 ‘부산국제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 국내 최장수 최대규모 록 페스티벌로 유료이다. 삼락·대저·맥도·화명생태공원은 낙동강하구 둔치를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도시화 되는 과정에 그래도 도심 속에서 자연과 만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땅’이다. 공원의 역사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분은 부산연구원 홈페이지(https://bdi.re.kr/www/reschrpt_view/K1021/231)에 들어가면 된다.
<인본사회연구소 소장 /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