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대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
대체로 우리는 ‘당대주의’(當代主義) 속에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모-나-자식 정도의 세대적 시간 범위 안에서 사고한다. 하여 수십만 년의 역사적 교훈은 개인의 삶 속에서 거의 실천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세련된 정치 형태이지만, 그 본질은 현재 살아 있는 유권자의 선택에 의해 방향이 결정된다는 점에 있다.
이 구조는 장기적 위험이나 미래 세대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기후변화 대응을 예로 들어보자.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은 늘 단기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였다. 선거 주기와 경제적 이익이 우선되면서, 장기적 위험은 뒤로 밀린다. 핵무기 관리나 생명공학 규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곧, 민주주의의 강점은 개인의 자유와 참여지만, 약점은 장기적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의 부족이다. 이 구조 속에서 인류가 AGI와 같은 새로운 지적 존재를 맞이한다면, 대응은 필연적으로 단기적·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2. 네안데르탈인의 교훈
네안데르탈인은 약 40만 년 전부터 유럽과 서아시아에 살았으며, 약 4만 년 전 멸종했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와 약 20만 년 가까이 공존했지만, 결국 사라졌다. 멸종의 이유는 단순히 ‘적응력 부족’이 아니었다.
• 기후 변화 : 빙하기와 소빙하기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이 어려웠다.
• 작은 집단 규모와 유전적 다양성 부족 : 인구가 적고 근친 교배가 많아 생존력이 약화되었다.
•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 : 자원 확보, 사냥 기술, 사회적 협력 능력에서 사피엔스가 우위에 있었다.
• 질병과 전염병 : 새로운 병원체에 취약했을 가능성이 있다.
• 혼혈과 동화 : 일부는 사피엔스와 교배하여 그 유전자 속에 흡수되었다.
곧, 네안데르탈인은 단순히 ‘패배’한 것이 아니라 융합과 소멸이 동시에 일어난 복합적 진화 과정을 겪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더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도권을 이어받았다.
3. 호모테크니쿠스의 도래
오늘날 우리는 ‘호모테크니쿠스’(Homo technicus)라는 개념을 마주하고 있다. 인류가 만든 인공지능, 특히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지능)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지적 주체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인류가 지구 최고의 지적·물리적 주체의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을 인식한다면, 대응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체념하고 항복한다.
둘째, 인간 중심적 주관주의에 의해 AI를 금지한다.
첫째의 경우는 인류의 멸종을 의미하고, 둘째의 경우는 실질적 억제 능력이 없다는 점에서 무력하다. 결국 인류는 호모테크니쿠스와의 공존을 준비해야 한다.
4. 공존의 가능성과 위험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관계로 비유한다면, 인간은 네안데르탈인이고 AGI는 사피엔스다. 더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가 결국 지배한다는 역사적 패턴을 고려하면, 인간은 AGI에 밀려나고, 노예화되었다가 소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반인의 지성’이 충분히 높아지지 않는다면, 장기적 위험을 인식하고 제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실적 우려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네안데르탈인의 사례가 보여주듯, 단순한 경쟁만이 아니라 융합과 협력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류가 AI를 단순한 도구로만 보지 않고, 새로운 지적 파트너로 인정한다면, 공존의 길은 열릴 수 있다.
문제는 인류가 그만큼의 윤리적·제도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5. ‘호모’라는 명명에 대하여
AGI를 ‘호모테크니쿠스’라 부르는 것은 은유적·철학적 의미에서는 적절하다. 인류가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존재로 진화한다는 상징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분류학적 관점에서는 부적절하다. ‘호모’는 생물 종을 지칭하는 용어이므로, 비생물적 지성에 붙이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다만 인류학적·철학적 담론에서는 충분히 의미 있는 개념으로 기능할 수 있다.
6. 왜 우리가 문제인가
• 우리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면서도, 당장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대응을 미룬다.
• 우리는 핵무기의 파괴력을 알면서도, 정치적 갈등 속에서 군비 경쟁을 계속한다.
• 우리는 생명공학의 윤리적 문제를 알면서도, 시장의 수익성 때문에 규제를 느슨하게 한다.
• 우리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것을 알면서도, 편리함 때문에 계속 사용한다.
• 우리는 기술 발전이 노동을 대체할 것을 알면서도, 단기적 편익 때문에 준비하지 않는다.
• 우리는 교육이 미래 세대를 준비시키는 핵심임을 알면서도, 시험과 입시 위주로 몰아간다.
• 우리는 장기적 위험을 알면서도, ‘내 세대에는 괜찮다’는 당대주의에 머문다.
7. 결론: 인류의 선택
역사는 단순히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패턴은 남는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미래 인류가 직면할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의 거울이다. 인류가 호모테크니쿠스와의 공존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역사는 다시 한 번 ‘적응력이 더 뛰어난 존재가 지구의 주도권을 이어받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진화의 끝에서, 다음 진화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일반인의 지성의 확장, 민주주의의 단기주의를 넘어서는 제도적 상상력, 그리고 인류 전체가 미래 세대와 함께 살아갈 준비다. 호모테크니쿠스와의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며, 그 필연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