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아버지
윤 정 구
어느 날 마침내 나도 헤어졌다
침목이 되어 아버지 옆에 누웠다
아버지 옆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엮인 굴비두름처럼 차례로 누워 있었다
아버지를 밟고 달려온 기차는 내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나를 지나쳤다
기차의 기적이 사라지면
천지는 다시 적막강산
나는 비에 젖어 투정도 하고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기도 하면서
어둠 속에 떠오를 맑은 눈빛
다정한 별을 기다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요?
자꾸 질문을 해대는 내 손을
아버지는 말없이 꽉 잡고 있다
- 시천지 제10집, ‘시천지의 한 세대 시천지의 세 마디’, 지혜
시 해설
예전에는 기차 레일 밑에는 방부제 처리한 침목을 일정한 간격으로 깔아서 기차가 달리는 충격을 흡수하도록 했고 선로반 사람들은 철로를 순찰하며 깨어진 침목은 새것으로 교체하였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이 시를 읽으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어느 날 마침내’ 새로운 ‘침목이 되어 아버지 옆에 누’워서 보니까 ‘아버지 옆에는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엮인 굴비두름처럼 차례로 누워 있었다’고 침목의 관점에서 표현한다. 20m의 거리에 침목이 15개 정도 필요하다면 어마어마한 나무가 필요한데 먼저 잘려 온 나무 늦게 잘려 온 나무들이 한 집안이라고 본다면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자가 섞여 있을 만하다. ‘아버지를 밟고 달려온 기차는 내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나를 지나쳤’으니 자식이라도 아버지 무거우니 조심하시라 말할 틈도 없었다.
모퉁이로 ‘기차의 기적이 사라지면 천지는 다시 적막강산’이 되었고 투정도 하면서 ‘다정한 별’ 즉, 미래의 변화와 희망을 기다리며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나요? 기차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요?’라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무거운 레일이 평행으로 길게 뻗어 누르고 있는 것은 현실의 억압을 상징한다.
그런 상황에 같이 놓인 아버지의 아버지인들 뭐라고 답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는 말없이 꽉 잡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을 때는 침목枕木도 침묵沈默을 안다. 참고 살다 보면 뭔가 나아지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으로 활동중이며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전임 회장이고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