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에너지 대전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속 가능성, 기후위기 대응,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그리고 위험의 최소화가 그 핵심이라면, 그 전환의 출발점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와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나오는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그 출발점은 놀라울 정도로 흐릿하고, 심지어 정면으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청와대는 “신규 원전 건설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말은 신중하다. 그러나 그 신중함은 방향에 대한 신중함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유예하기 위한 언어의 신중함에 가깝다. 지난 7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한국 원전 경쟁력은 세계 최고”라며, “국내에 짓지 않으면서 수출만 하는 것이 궁색했다”고 말한다.
이 발언이야말로 지금 정부 에너지 담론이 어디에서 균열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궁색한 것은 ‘원전을 수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위험하다고 판단한 기술을 타국에 팔아넘기면서도 스스로는 도덕적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식이다.
1. 위험한 것은 우리에게, 돈은 수출로? 이 기묘한 논리
원자력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다. 원전은 사고 가능성, 방사성 폐기물, 수만 년에 이르는 관리 책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피해를 전제로 한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회가 원전을 선택할 때는, 단순한 경제성이나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단지 이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위험을 최소화하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 관계자들은 그 선택을 “궁색했다”고 평가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궁색한 것은 누구의 시선에서인가? 원전을 팔아 이익을 얻지 못한 산업계의 시선인가, 아니면 원전 수출 경쟁에서 뒤처질까 우려하는 관료의 시선인가. 만약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라면 왜 국내에서는 신규 건설을 “아직 이르다”고 말하는가.
반대로, 만약 국내에서조차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고 위험 부담이 크다면, 그 기술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비겁한 태도는 이것이다.
“우리는 위험을 회피하면서, 타국에는 위험을 수출한다.”
2. “재생에너지로는 어렵다”는 말의 오래된 게으름
김성환 장관은 “섬 같은 상황에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 이 역시 수십 년째 반복되는, 너무도 익숙한 레퍼토리다. 재생에너지는 불안정하다, 간헐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 말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재생에너지가 불안정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책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송배전망 확충,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지역 분산형 전력망, 수요 관리, 스마트 그리드 - 이 모든 것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고, 실제로 실행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원전은 대규모 중앙집중형 에너지 체계를 유지하는 데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관리하기 쉽고, 기존 권력 구조와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분산, 지역 참여, 민주적 의사결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래서 늘 “현실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에너지 대전환이란, 편리한 과거를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3. “AI와 에너지 대전환”이라는 말의 공허함
청와대 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AI와 에너지 대전환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준비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한다.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에너지 대전환의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AI는 전력을 많이 소비한다. 그렇다면 그 전력은 어디서 오는가. 원전인가, 재생에너지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AI만 말하는 것은, 마치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하면서 어디로 가는지는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AI와 원전을 결합하는 순간, 우리는 또 하나의 위험한 미래를 만든다. 대규모 전력 소비, 중앙집중형 에너지, 사고 시 피해의 극대화. 이것은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위험의 증폭이다.
에너지 대전환이란 말이 진정 의미를 가지려면, 그 전환의 방향은 분명해야 한다. 원전의 연장이 아니라, 원전 이후의 세계를 말해야 한다.
4. “국내에 짓지 않으면서 수출하는 것이 궁색하다”는 발언의 윤리적 파산
김성환 장관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정부 내부에 자리 잡은 에너지 윤리의 붕괴를 상징한다. 원전 수출이 왜 문제인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위험의 외주화이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고, 바다는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원전을 수입하는 국가들은 대개 정치·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사고가 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짓지 않으면서 수출만 하는 것이 궁색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위험을 감당하기 싫지만, 당신들이 대신 감당해 준다면 돈은 벌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국가의 태도인가. 기후위기 시대에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윤리는, 위험을 나누는 것이지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5. 원전이 답이 아니라면, 답은 분명하다
논쟁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논리는 단순하다. 원전이 안전하고 필수적이라면 → 국내에서도 신규 건설을 명확히 추진해야 한다. 원전이 위험하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면 → 수출하지 않으면 된다. 이 중간 지대는 없다.
“국내는 아직 이르고, 해외는 적극 수출”이라는 태도는 정책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그저 책임을 회피한 채 이익만 취하려는 계산일 뿐이다. 에너지 대전환은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검토 중이다”, “아직 이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은 이미 충분히 들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택이다.
6. 지금 정부가 선택해야 할 단 하나의 길
지금 정부가 진정으로 에너지 대전환을 말하고 싶다면, 다음 중 하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원전 중심 국가로 갈 것인지,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갈 것인지. 둘 다 하겠다는 말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만약 두 번째를 선택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원전 수출을 멈추는 것. 그것이 최소한의 윤리이며, 에너지 대전환을 말할 자격을 얻는 출발선이다. 원전을 수출하지 않으면 될 일을, 왜 다시 국민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려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에너지 대전환’은 그저 공허한 구호로 남을 것이다.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